평택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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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농악
지정번호 : 중요무형문화재 11-나호 (지정일 : 1985. 12. 1)
소 재 지 : 팽성읍 평궁리 283-1
우리나라의 농악은 크게 웃다리 농악(경기 · 충청지역), 전라좌도 농악, 전라우도 농악, 영남 농악 등으로 나누어진다. 각 지역에는 그 농악의 대표성을 인정받은 단체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평택지방은 드넓은 벌판을 배경으로 농업이 발전하여 왔으며 따라서 자연히 농악도 함께 발달해 왔다. 또한 경기 · 충청지방에는 예로부터 전문 연희패가 발달해 왔는데 특히 걸립패가 가장 늦게까지 남아 활동하였다. 전문 연희패의 영향을 받아 더욱 발전해 오던 평택농악은 인근의 안성 · 화성 등지와 함께 농악의 중심 역할을 해오던 중,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으면서 명실공히 웃다리 가락의 대표적인 농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판굿은 굿패들이 여러 가지 놀이와 진풀이를 순서대로 짜서, 갖은 기예를 보여주기 위하여 벌이는 풍물놀이다. 판굿은 보통 30명 정도로 이루어지는데, 농기와 영기를 앞세우고 호적수가 따르며 그 뒤로 쇠, 징, 장고, 북, 법고, 무동 등이 이어진다. 평택농악의 판굿은 진풀이가 다양하고 화려하며 생동감이 넘친다. 당산벌림 대형과 무동놀이가 가장 큰 특징인데, 특히 5무동에서 보여주는 동거리와 곡마단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평택농악만의 자랑거리다.
평택민요
지정번호 :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8호
지정일자 : 2009년 3월 19일
예능보유자 : 이민조(농요), 이종구(어로요), 박용철(장례요)
전수장소 : 비전동 남부문예회관 앞길 21

평택민요는 근대 평택지역 주민들의 생업과 의식 등 생활상이 함축된 민요로 농요와 어로요, 장례요의 세 분야로 나뉘어 예능보유자가 지정됐다.
농요는 수십 명의 두레꾼들이 북 장단에 맞추어 모심는 소리와 논매기 소리, 비단타령, 자진 논매기 소리 등을 흥겹게 부르며 농작업의 피로함을 여흥으로 달래주는 소리이다
어로요는 경기남부지역에서 전승되는 거의 유일한 어로요로 강화나 옹진지역의 어업요와는 음악적으로 크게 구별되며, 고기잡이배가 바다로 나가는 과정부터 고기 잡을 때, 포구에 도착하여 생선을 사려는 사람들과 흥정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노래다.
장례요는 상여를 메고 갈 때 선소리꾼이 부르는 장례의식으로 상여가 죽은 이의 집을 떠나면서 부르는 발인하는 소리, 상여를 들거나 내리며 부르는 소리, 장지까지 가며 부르는 소리 등이 있다.

서각장
지정번호 : 경기도무형문화재 제40호
지정일자 : 2004년 1월 5일
예능보유자 : 이규남
전수장소 : 비전동 어인남로 40-8

나무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긴 목각판을 서각(書刻) 또는 각자(刻字)라고 하고, 그 기술을 가진 장인(匠人)을 서각장(書刻匠) 또는 각자장(刻字匠)이라 한다.
이규남 선생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강화도의 전등사에 갔다가 그곳에 보관돼 있던 팔만대장경판과 탁본을 보고 대단히 충격적인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후 생계를 위해 직장생활을 하다가, 1984년 중요무형문화재 106호 각자장인 철재 오옥진 선생을 만나게 된다. 세 번이나 뿌리침에도 불구하고 네 번째 찾아간 이규남 선생은 그가 원하던 서각을 3년 동안 본격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와 함께 한글서예는 여성구 선생에게서, 한문은 무불 선주석, 사군자는 백산 유기곤, 전각은 공계 진영근 선생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이규남 선생은 주로 오래된 느티나무나 돌배나무, 대추나무 등 견고하면서 결이 좋은 나무를 사용하여 단순히 현대적인 것보다는 와당문이나 고분벽화의 전통적인 문양에 현대적인 것을 가미하여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글의 내용이 살아 감동을 주는데 호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