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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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원 장군 묘 및 신도비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56호 (지정일 : 1980. 6. 2)
소 재 지 : 포승읍 희곡리 산83-6
이대원장군은 조선 선조 때의 충신이다. 1556년(명종 21) 포승면 내기리에서 출생하여, 18세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587년(선조 22) 전라도 고흥 지방의 녹도만호로 재직 중일 때, 왜구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 뒤 가족들이 장군이 속저고리에 피로 써서 보낸 절명시 28자를 받아 고향 대덕산 밑에 장사지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왜군이 장군의 사당에 불을 지르자 갑자기 소나기가 와서 불이 꺼졌기에, 나라에서 소나기 ‘확’ 자를 써서 확충사라고 사액이 내려졌다고 한다.
신도비는 이대원장군 사당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 높이가 300cm이며, 비신은 높이 220cm, 너비 85cm, 두께 40cm이고 대리석을 돌감으로 이용하였다. 대좌에는 물결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글씨는 비교적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비문은 남구만이 찬하고 김진규가 전액하였으며 조상우가 글씨를 썼다. 이 비를 쓴 시대는 1675년으로 추정된다.
원균장군 묘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57호 (지정일 : 1980. 6. 2)
소 재 지 : 도일동 산82
원균장군 묘는 1597년(선조 30) 7월 4일 전사한 원균의 유품을 장군의 애마가 몰고와 가족에게 죽음을 알렸다는 설화가 있듯이, 정유재란의 여파가 끝난 뒤에 고향인 도일동 산 82번지에 조성되어 오늘에 이르는 것으로 본다.
원균은 자는 평중이며, 임진왜란 때의 활약으로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에 책록되고, 숭록대부 · 의정부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원릉군에 추증되었다. 묘역은 임금이 책록 봉작 교서와 제문을 내렸을 때 잘 조성되었다고 본다. 신도비 1기, 문인석 2기, 무인석 2기, 석등 1기, 묘비 2기가 서 있고, 설화가 담긴 애마총이 묘 아래쪽에 있으며 사당은 묘의 서북쪽에 있다.
농성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74호 (지정일 : 1981. 7. 16)
소 재 지 : 팽성읍 안정리 산41-2
팽성읍 안정리 일곱메 마을 부근에 있는 판축 토성(土城)이다. 농성의 모양은 타원형으로 동(東), 서(西)로 성문지(城門地)가 있다. 총 면적은 14,900㎡이며 성벽의 높이는 평균 6∼8m 내외이고, 둘레의 길이는 약 300m, 성 내부 남북의 길이가 101.9m, 동서의 길이가 73.2m이다. 성안에는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여름에는 냉수가 나오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고 하며, 전체적인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농성의 내부는 북쪽이 약 2m 가량 높고 동서 중앙의 단면이 높아 전체적으로 볼록렌즈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농성의 토양은 붉은 황토 진흙으로 모래가 약간 섞여서 밭농사에 적합하다.
농성의 축성(築城)시기에 대해서는 첫째, 삼국시대 축성설(築城說), 둘째, 고려시대 축성설(築城說) 등과 신라말 고려초 임(林)씨의 시조(始祖)인 임팔급(林八及)이 쌓았다는 설 등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편이 다수 발견되는 점으로 미루어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안재홍 생가
지정번호 : 경기도 기념물 135호 (지정일 : 1992. 12. 31)
소 재 지 : 고덕면 두릉리 646
해방 전후의 언론인인 민세 안재홍(1891∼1965)이 살던 집으로 완만한 경사지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1994∼1995년 안채, 사랑채, 담장, 화장실, 대문 등이 보수되어 현재의 모습을 형성하였다. 20세기 들어 전통가옥들이 생활의 편의를 수용하여 변화하게 되는데 이 집의 경우가 이러한 변화된 경기지역 살림집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와 사랑채가 마주보고 배치되어 있으나 원래는 대문채까지 있었던 집이다.
안채는 경기도지방의 전형적인 ‘ㄱ’자형 평면의 7칸 전퇴집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건넌방이 있고 왼쪽에는 안방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앞으로 부엌과 부엌광, 나무간이 연결되어 있다. 구조는 오량(五梁)이며, 팔작기와지붕집이다.
사랑채는 ‘ㅡ’자형 평면으로 오량구조(五梁構造),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에 대청을 두고 오른쪽에 온돌방, 왼쪽에는 대청보다 한 단 높여 만든 누마루가 연결되어 있으며, 대청과 온돌방 전면에는 툇마루가 있으며, 잘 다듬은 방형 초석을 놓고 각기둥을 세웠으며, 누마루 하부는 장초석을 사용하였으며 함실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평택무성산성지(平澤武城山城址)
지정번호: 경기도기념물 제202호
소 재 지 : 청북면 옥길리 산17-8번지 외 12필지
무성산성은 평택시 서부 청북면에 위치하고 있는 무성산(武城山:마루산·테미산이라고도 함)의 정상부(해발 104.7m)를 감싸고 축조된 테뫼식 토축산성(산 정상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둘러 쌓은 토축산성)이다.
산성은 능선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남쪽의 자미산과 이어진다. 평면형태는 남북이 길쭉한 장타원형에 서쪽에 위치한 계곡부로 인하여 서벽이 서쪽으로 불쑥 돌출된 ㅓ자 형태를 하고 있다. 성벽은 동·남·북벽이 능선을 감싸 돌고 있으며 서벽은 계곡을 가로질러 축조되어 성내의 유수를 이곳을 통해 배출할 수 있는 지형이다. 성벽을 따라 평탄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정상부의 북사면으로 능선을 깎은 뒤에 만들어진 평탄지들이 존재한다. 문지(門地)는 동문지(東門址)와 서문지(西門地)가 있으나 현재는 군사시설로 인하여 파괴가 심하다. 서문지는 성내의 물이 모일 수 있는 저지대인 점으로 미루어 수구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무성산성은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아산만 일대의 방어 및 통치와 관련하여 유용한 자료를 제공하여 줄 뿐만 아니라 토성축조 방식과 활용문제에 있어 직접적인 자료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평택자미산성지(平澤玆美山城址)
지정번호: 경기도기념물 제203호
소재지: 안중읍 용성리 산68 외 14필지
자미산성은 평택시 서부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자미산(玆美山:해발 110.8m)에 축조되어 있는 내성(內城)·외성(外城)과 부성(副城)으로 이루어진 삼중구조의 복합식 성곽이다.
성곽은 정상부 주위를 토축으로 축조한 내성과 정상부에서 이어지는 7~8부 능성을 따라 석축으로 축조된 외성이 둘러싸고 있으며, 자미산 정상부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의 110m 거리에 토축으로 이루어진 성에 버금가는 부성이 위치하고 있다. 안성천 하류와 아산만 입구의 해양방어체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삼국시대의 산성이라 할 수 있다. 자미산성의 북쪽으로 무성산성, 동쪽으로 용성리 강길마을성이 위치하며, 남쪽으로 약 100m거리에 비파산성, 용성리성 등이 자리하고 있다.
자미산의 자미는 북두칠성을 의미하며 주민들은 '재미산'이라고 부른다. 내·외성의 선후관계는 외성 북벽부근에서 내성의 토루가 외성의 건물지에 편입되는 것으로 보아 내성이 먼저 축조되고 이 후 내성이 파괴되면서 외성으로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로는 내성 절개부에서는 청동기 시대 무문토기류, 백제시대 타날문토기류가 출토되며 외성에서는 신라시대 토기·기와류가 출토되고 있다.
내성은 정상부를 둘러싸고 흙으로 쌓은 토축성벽으로 바깥면만 성벽을 축조한 둘레는 240m정도이며 성벽높이는 2~2.5m 내외이다. 외성은 돌로 쌓은 석축산성으로 전체 둘레는 582m이다. 전체 성곽의 평면은 동서가 약간 긴 장방형을 기본형태로 하고 있으며 지형에 따라 북동회절부가 남쪽으로 돌출된 형상을 하고 있다.
성내 시설물로는 건물추정지 9개소, 장대지, 추정동문지와 적대, 추정수구지, 동·서?북 치성 등이 있다.
 
평택비파산성지(平澤 琵琶山城址)
지정번호: 경기도기념물 제204호
소재지: 안중읍 용성리 산6-1 외 24필지
비파산성은 평택시 서부의 안중면 용성3리 설창마을과 덕우1리 원덕마을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비파산(琵琶山:해발 102.2m)의 북쪽 정상부와 남동쪽 하단부의 용성리 뒷골을 포함하여 축조된 포곡식 형태의 토축 평산성이다.
비파산성은 지형상 북고남저(北高南低)·서고동저(西高東低)의 형상을 하고 있다. 서벽과 북벽은 비파산의 주능선을 따라 진행되고, 남벽과 동벽의 일부는 얕은 능선이 감싸며 돌아가고 있다. 이 양능선사이의 계곡을 막아 동벽을 축조하였다. 성벽의 길이는 동벽 약 124m, 남벽 339m, 서벽 430m, 북벽 682m로 전체길이는 약 1,622m에 이르고 있다. 동벽은 용성리 뒷골의 경작화로 인해 일부가 파괴되어 있는데, 파괴된 성벽의 절개부를 통하여 축조방법을 살펴보면 30cm 내외의 할석재를 사용하여 2단의 기단석렬을 조성한 후 암갈색 점질토와 적갈색 사질토를 교대로 쌓아가며 판축하였다. 판축층의 바깥쪽 측면은 일정정도 와적층을 쌓아 보강하였다. 남벽은 비파산의 능선을 따라 내외 겹축의 토루(土壘:흙으로 쌓은 작은 성)가 축조되었는데 일부구간은 민간 묘 조성과 토사로 인해 성벽이 유실되어 있다. 유실된 성벽은 서벽부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으며 이곳의 성벽은 내벽이 없는 편축 성벽으로 성내에는 너비 3~5m정도의 회곽도가 조성되어 있다. 북벽은 정상부에서 시작하여 비파산의 하단부로 연결되고 있으며 편축 성벽으로 외벽의 높이는 약 10m내외이다.
성내 시설물로는 문지 5개소와 치성 4개소, 건물터 14개소, 음료유구 5개소가 확인되고 있다. 성내외에서는 고려에서 조선시대까지의 기와편과 토기편, 자기편이 산재하여 있다.
비파산성의 북쪽으로는 약 100m 거리에 자미산성이, 남쪽으로 약 500m 거리에 용성리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비파산의 남서향하는 지맥에서는 길이 약 7~8km의 석정리장성(石井里長城)이 이어지고 있어 이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부각시켜주고 있다.
비파산성은 고려초기 현성으로 축조되어 행정치소 및 해안방어의 중심기능을 했던 성으로 당시 지방제도의 형성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평택용성리성지(平澤 龍城里城址)
지정번호: 경기도기념물 제205호
소재지: 안중읍 용성리 455 외 28필지
용성리성지는 평택시 서부의 안중면 용성3리에 축조된 토축 평지성(平地城)이다.
용성리성은 비파산 동쪽능선에 위치하고 있는데 평면형태는 북벽이 약간 짧은 사다리꼴이다. 지형은 북고남저(北高南低), 동고서저(東高西低)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남북길이가 128m, 동서길이는 87m, 전체둘레는 약 449m이다. 용성리성의 동·서·북벽은 능선을 따라 경사면을 이용하여 축조하였고, 남벽은 성내의 평탄한 저습지대를 가로지르며 쌓았다. 성벽의 축조방법은 흙으로 쌓은 토축 성벽으로 내·외 겹축이며, 남·북·동벽의 바깥쪽으로는 외황시설을 축조하였다. 남벽과 동벽의 일부는 성내에 조성된 경작지로 인하여 파괴가 심한 편이며, 동벽의 밖으로는 정수장의 농수로가 외황의 일부를 파괴하고 들어와 있다. 북벽은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데 이곳의 성벽 높이는 약 5m이다.
문지(門地)는 모두 3개소가 확인되는데 이중 동문지(東門址)와 서문지(西門址)는 현재도 성내로 진입할 수 있는 주요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서문지는 양쪽 성벽이 서로 어긋나며 사이에 개구부를 두는 형식이다. 치성은 5개소가 확인되는데 서벽·북벽·동벽의 중앙부에 체성벽에서 약 2~3m 돌출하여 축조되어 있다. 이 외 성내 시설물은 건물지 5개소와 수구지 1개소가 있다. 용성리성에서 채집되는 유물은 매우 적은 편으로 기와류들은 대개 고려시대 이후의 시기에 해당되며 토기류도 외면에 문양을 타날하고 내면에도 박자가 남아있는 고려시대 토기편들이다.
용성리성산지는 규모가 작고,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비파산성과 연계된 방어시설로 일종의 부성으로 추정된다.
 
평택 덕목리성지(平澤 德睦里城址)
지정번호: 경기도기념물 제206호
소재지: 현덕면 덕목리 647-1 일원
덕목리성은 평택시 서부의 덕목리에 위치하고 있는 평지성(平地城)이다. 원덕목 마을의 진입로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네모반듯한 모양의 방형(方形)의 토축성이 축조되어 있다. 즉 60m 거리를 두고 동성(東城)과 서성(西城)으로 나뉘어져 성곽이 배치되어 있는 형태이다. 성곽이 자리하고 있는 곳은 고등산의 능선이 북서쪽으로 내려오면서 끝나는 지점인 해발고도 20m 이하의 낮은 구릉지대로 평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동성(東城)은 마을과 경작지로 인해 모두 파괴된 상태인데, 마을 주민의 증언과 잔존하는 기저부를 토대로 추정해본 성의 둘레는 약 226m정도이다. 서성(西城) 역시 북벽과 동벽의 일부만 남아있고 남벽과 서벽은 경작지와 농로 조성으로 인하여 대부분 파괴되었다. 서성의 평면은 동서방향을 장축으로 하는 장방형이고 지형은 북고남저(北高南低), 동고서저(東高西低)의 형상이다. 덕목리성의 성벽은 흙으로 내·외벽을 쌓아 축조한 내·외 겹축의 토축성벽이다. 서성의 서벽에서 노출된 단면을 조사한 결과 성벽은 적갈색 점질토와 암갈색 사질점토를 성안, 성밖에서 번갈아 가며 다짐하여 올라가는 판축기법을 사용하였다. 판축시 적갈색 점질토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암갈색 사질점토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서로 엇갈리게 쌓고 있다. 켜를 이루며 쌓은 판축층은 토루의 아래에서는 15~25cm의 두께이며, 상부에서는 5cm미만의 얇은 층을 이루고 있다. 판축성벽의 밖으로는 외항을 시설하였으며 외황은 북동회절부를 지나 동벽으로 이어지고 있다.
성내 시설물은 현상변경이 심하게 이루어져 정확한 현황파악이 어려우나 서성에서 문지 1개소, 치성 1개소, 건물지 1개소 등이 있다. 성내에서 수습되는 유물은 새무늬와 직선무늬 통일신라시대의 기와편이 일부 채집되며 그 외에는 대부분이 고려 시대의 기와류와 토기류이다.